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롤린 그리말디 (문단 편집) == 생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umblr_l_260803685781863.jpg|width=100%]]}}} || 1957년 1월 23일,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공비 [[그레이스 켈리]]의 1남 2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모나코 공국은 1910년 [[프랑스]]와 맺은 조약으로 그리말디 가문에 후계자가 없으면 프랑스에 합병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카롤린 공녀의 탄생으로 이 위기를 넘기면서 국민들은 거리에서 "공주님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고 한다. 임신이 알려진 직후부터 켈리백 에피소드 같은 화제를 일으키고 태어나기도 전에 언론의 관심을 끌고 다닌 카롤린 공녀는 [[독일계 미국인]]과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후손인 어머니 [[그레이스 켈리]]보다 부계인 그리말디 가문과 남미 혼혈인 폴리냐크 집안의 유전자를 강하게 타고난 [[남유럽]]계 외모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공녀라는 배경 때문에 항상 기자들을 몰고 다녔고, 유명인들의 일상을 찍어 언론에 팔아먹는 [[파파라치]]라는 어원의 원조를 만들었다. [[그레이스 켈리]]는 딸이 외국 왕실이나 명문 귀족 가문에 시집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불륜|나중에 그렇게 되기는 했는데...]] 그리말디 가문은 [[유럽]] 왕가 사이에서 지방 귀족 나부랭이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했기 때문.[* 사실 유서깊은 [[룩셈부르크]] 대공가([[부르봉 왕조#s-2.4.1.1|부르봉-파르마 가문]]), [[리히텐슈타인]] 공가와 같은 공실 취급 받기도 애매한 가문이다. 물론 일반인들 기준에선 엄연한 [[상류층]]이지만.] 일단 [[모나코]] 자체가 그리말디 가문이 무단점령해 통치한 땅인데다 [[사생아]]를 후계자로 삼아서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평민]] 출신 [[미국인]]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공비가 되면서 더 격 떨어지는 이미지로 전락했었다. 그나마 무단통치의 역사가 1000년에 가까워서 그렇지 사실상 공족 행세하고 다니는 돈많은 귀족 집안. 켈리 신드롬의 여파로 모나코를 방문해 관광 수익을 올려준 대다수가 [[미국인]]이였다. 이런 [[그레이스 켈리]]가 찍어 두었던 사윗감이 무려 [[윈저 왕조|영국 왕실]]의 [[찰스 3세|찰스 왕세자]]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카롤린의 신분으로는 장래 [[영국]] [[왕비]]가 되기엔 꽤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영국 왕실에서 [[그레이스 켈리]]를 사돈으로 맞이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둘의 만남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종교]] 문제는 둘째치고 주체 못할 바람기도 똑같고 무엇보다 두 사람 다 극도로 이기적이어서 맞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어릴 때부터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써서 이에 부응하듯 카롤린 공녀는 학창 시절 우수상을 빈번하게 받아올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고 성적도 매우 우수했다. 10대 시절 카롤린 공녀는 [[영국]]에서 [[유학]]하며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딸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부모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고삐 풀려서 놀아제끼는 모습이 언론에 늘상 등장하며 부모의 속만 타들어갔지만, 그녀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웃으며 '젊은 애들이 클럽 가 술 마시고 남자랑 놀 수도 있지 왜 나한테만 뭐라 그럼?' 식으로 당당했고, 이는 동생들인 알베르와 스테파니로 이어질수록 심해져, 결국 모나코 공가=날라리 졸부 귀족이라는 이미지에 일조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